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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더 이상 젖을 찾지 않는다.

벌써 3일째다. 서서히 젖 물리는 횟수를 줄이기는 했어도 끊을 생각은 없었다. 물론 그럴 때도 되었다. 우리 아기가 두 돌 하고도 한 달이 넘었고, 최근까지 가장 자주 듣던 인사말이 “이제 젖 끊었냐?”는 거였으니까… 아직도 젖 먹이냐, 영양가 하나도 없다, 할머니 젖 되겠다, 다 큰 애 젖 먹이니 보기 좀 그렇다 등등 이제 애정 어린 잔소리도, 그보다 더 듣기 민망했던 소리, ‘2년 넘게 젖을 먹이다니 정말 대단하다’는 칭찬(?) 아닌 칭찬도 이젠 안녕~인가? 

그런데 지금이라도 커밍아웃 해야겠다. 나는 단지 모유수유가 아기에게 좋다는 이유만으로 오래도록 인내하며 젖을 물리는 ‘모성애 지극한 엄마’는 아니다. 모유수유가 제 아무리 좋아도 아마 귀찮고 힘들고, 돈이 많이 드는 일이었다면, 일찌감치 그만두었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모유수유가 좋다는 걸 모르는 엄마는 없다. 유니세프에서도 최소 2년, 오래 먹일수록 아기의 면역력이나 심리적 안정 면에서 좋다며 권장한다. 나까지 나서 강조하지 않더라도 모유의 훌륭함과 모우수유를 권장하는 말은 공급 충만이다. 그런데 내가 오래도록 젖을 먹일 수 있었던 지극히 이기적이고 실용적인 이유에서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모유수유의 장점은 부족한 잠을 세이브 해준다는 거다.

낮에도 젖 물리며 꾸벅꾸벅 졸 수 있고, 밤에도 일어나 앉지 않고도 젖을 먹을 수 있다. 나는 원래가 어머어마한 잠꾸러기다. 밤에 도둑이 들었다 해도 귀찮아서 그냥 물건을 훔쳐가게 놔둘 정도로 잠이 좋다. 그래서 아기가 울어도 웬만해서는 일어나지를 못했다. 귀로는 분명 들었는데, 이 정보가 뇌에서 처리가 안 되는 거다. 그런 엄마와 부인을 만난 탓에 늘 남편이 먼저 깨서 아기를 달래고, 내 젖을 물려주는 등 조치를 취해야하는 운명이었다. 그래서 내가 고안한 것이 아예 젖가슴을 풀어놓고 자는 거다. 수유복 지퍼만 열어두면, 아기가 스스로 젖을 찾아 물었다(목 마른 사람이 우물 파야지… 일찍부터 자기 살 길을 찾은 우리 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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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기동력을 가질 수 있게 한다.

나는 하루라도 밖에 안 나가고는 입 안에, 아니 엉덩이에 가시가 돋는 사람이다. 내가 젖먹이 아기를 데리고 동해 번쩍, 서해 번쩍! 밭에도 가고, 여행(심지어 해외여행까지)도 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다 믿는 구석(젖)이 있어서다. 갑자기 답답해서 뛰쳐나가고 싶을 때 애만 들쳐업고 맨몸으로 그냥 뛰쳐 나가면 된다. 돌아다니면서 애가 배가 고파하면 젖 물리고, 목이 말라해도 젖 물리고, 아기가 깜짝 놀라거나 감기 기운이 있어도 젖 물리고, 아기가 졸려해도 젖을 물리면 만사형통이다.

세 번째 장점은 다이어트 효과다.

나는 아기 낳기 직전 25kg나 체중이 불어 있었다. 요즘 젊은 엄마들은 처녀적 몸 복원력을 위해서 ,얼마 이상 체중이 늘지 않게 관리를 한다던데, 이 무식하고 식탐 많은 엄마는 맘껏, 양껏 먹었더니 그리 되었다. 태평한 척 했지만, 계속 코끼리 같은 몸이 가끔 걱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벌어진 일! 나중에 아기를 낳고 생각하자며 마음을 비우고 있었다. 그런데 모유수유 1년 만에 처녀 때 몸(그때도 가히 날씬한 몸은 아니었음ㅋㅋ)으로 완전히 회복됐다. 아… 물론 완전히는 아니다. 긴장하지 않고 릴렉스하고 있을 때 나오는 똥배는 어쩔 수가 없다고 해서 그냥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산다.

네 번째 장점은 공짜밥!!!이 생긴다는 것이다.

무슨 얘기냐고? 어느 날은 친구가 놀러와서 동네 식당에 밥 먹으러 갔다. 마침 아기 낮잠 시간이어서 보채길래 젖을 물렸다. 그런데 맞은편에서 어떤 어르신이 흐뭇한 미소를 빵빵 날려주시는 거다. 분명 음흉함과는 정말 차별화된 따뜻하고 온화한 미소였다(고 믿는다). 그래서 살짝 웃으며 가볍게 목례를 했을 뿐인데, 나중에 보니 우리 밥값까지 계산하고 가신 거다. 그날 따라 비싼 거 먹었는데…ㅋㅋㅋ 식당 아주머니 말이 젖 먹이는 게 너무 기특해서였대나… 우앙… 대박!!!.그 이후로부터 공짜밥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더 대놓고 모유를 먹이기 시작했다.ㅋㅋ 물론 공짜밥은 더이상 생기지 않았지만, 공짜 미소는 배 터지게 많이 받았다.

처음부터 대놓고 젖소부인이었던 건 아니다. 처음에는 아기의 모유수유를 위해 (창피하니까) 폐쇄된 공간을 찾아가거나, 최소한 등을 뒤로 돌려서라도 먹였다. 그런데 다니는 곳에 수유실을 갖춰 놓은 곳이 잘 없을 뿐더러 수유 공간을 찾아 헤매는 것도 점점 귀찮아졌다(이… 귀차니즘 어쩔거니…). 그래서 그냥 볼테면 봐라, 그래봤자지 하면서 점점 대범해졌다. 커피숍, 식당, 대중교통, 공원…장소불문하고, 이제는 숨기지도 않고 대놓고 당당하게 젖을 먹이게 됐다. 이제 숙련노동자(!)가 되어 순식간에 젖을 꺼내서 물리고, 노출에 대한 걱정 없이 우아하게 앉아서 수다떨며 젖을 먹인다. 남편이 괜찮겠어?하면 팬 서비스 좀 하지..뭐.,.하면서…

그 외에도 가난한 엄마라는 타이틀에 맞게 모유수유는 분유값, 병원비, 약값 등을 세이브 해주었다.

또한 ‘에코블로거’로서의 명성(사실 명성은 쥐뿔 없고, 블로그도 파리 날린다만…^^)에 부응하여 쓰레기 방출량도 세이브해주는 등 젖이 주는 물적, 심적, 사회적, 경제적, 환경적 혜택은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다. 무엇보다 분유, 젖병, 젖꼭지 등등 모유수유를 하지 않을 때 추가되는 비용이 상당히 줄어 가계살림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장점 중의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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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장점이 백만 가지도 넘는 모유수유. 하지만 단점이 하나 있다.

도 닦은 것도 아닌데, 무성욕!!!의 경지에 이른다는 거다. 모유수유를 (오래) 하면 성욕이 감퇴된다는 말이 있는데, 내 경우 실제로 그랬다. 그게 호르몬의 영향인 건지, 아니면 육아가 힘들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임신 중에도 좀 밝히던(!) 내가 성욕제로라니…언빌리버블!!!

그러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자주도 아니고 어쩌다 형성되는 물리적 접촉에도 화학적 반응이 생겨주질 않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남편이 싫어진 것도 아닌데도 귀찮은 생각부터 들었고, 다음부터는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고 원천봉쇄를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부부간 섹스리스가 단순히 애정이 식어서 되는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영 그렇게 되면 안 되겠다싶어 최소한 인바운드 콜은 처리하려고 노력한다. 그랬더니 이제 슬슬 아웃바운드 콜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모유수유 때문에 제 아무리 공짜밥이 생긴다고한들, 부부가 섹스리스가 되면 무슨 소용인가? 이 부분에서는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때부터 부부간 금슬은 노력이다. 노력하면 된다!!!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아침(새벽)형 인간이 되라는 거! 저녁에는 젖 먹이다 같이 잠이 드는 경우가 많아서 물리적으로도 어렵고, 피곤해서도 마음이 잘 동하질 않는다. 그러나 아기가 깨기 전 새벽에는 약간 몽롱하기도 하고, 아기 깨지 않게 조심조심하다보면 은근히 스릴도 넘친다. ㅋㅋ 단, 모닝섹스는 지각을 부를 수 있으니 조심해야한다.^^

* 한겨레 새로쓰는 육아이야기 babytree에 게재된 글을 필자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글. 김연희 (에코블로그 http://ecoblog.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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