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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과 사랑 

세상을 살다보면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이 된다. 내가 배고프면 세상 살 맛이 안 나고 의욕이 없어진다. 내가 아프면 모든 것이 다 덧없고 의미가 없어진다. 내가 사랑을 못 받으면 다른 사람들이 사랑하는 모습들이 모두 보기 싫다. 내가 불행하면 다른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역겹고 괴롭다. 

누구나 내가 배부르고, 건강하고, 사랑받고, 행복해지고 싶다. 다른 사람들이 배고픈 것이 나의 배고픔과 관계가 없고, 무엇이든지 내가 먼저다. 당연히 사돈이 논을 사도 배가 아프다. 

그런데 어느 날, 나보다 더 좋은 사람이 나타난다. 그 사람을 위해서는 나의 고통 따윈 상관없을 것 같은 사람이 혜성~처럼 어느 날 내 앞에 짠~ 하고 나타난다. 그 사람이 배고프면 차라리 내가 굶고 그 사람에게 내 밥을 대신 가져다주고 싶고, 그 사람이 슬퍼하는 것보다 내 살이 찢겨져 나가는 것이 나을 것 같고, 그 사람이 아프면 내가 대신 아프거나, 아예 대신 죽어주고 싶은 그런 사람…. 

그렇게 사랑은 시작된다. 그런 사랑을 해 보지 못한 사람도 물론 많지만, 누구나 그런 사랑을 꿈꾼다. 아니 그런 사랑을 못 해 본 사람은 아예 다른 사람에 대한 희생이나 배려를 하고 싶지 않거나, 할 수 없는 성격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사랑은 그렇게 시작된다. 눈에 콩깍지가 씌었거나, 뇌가 이상해지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는 이타심으로 시작된다. 뇌과학적 으로는 보면 마약에 중독되거나, 도박에 중독된 것과 사랑에 중독된 것은 같은 상태다. 그렇게 뭔가에 중독된 것과 같은 뇌 변화에 의해 사랑은 시작되고 유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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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이 되면 엔도르핀이 나온다. 즉 잠시나마 행복해진다. 엔도르핀은 몸에서 분비되는 마약 성분이다. 마약을 했을 때처럼 몸과 뇌가 몽롱해지고 행복해진다. 사랑도 그렇다. 

마약이나 도박은 그것을 하는 환경에서 엔도르핀이 분비되고 황홀함을 느끼지만 사랑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 오히려 상대방 때문에 괴로운 상황에 빠지기도 한다. 일방적인 사랑을 한다면 처음에는 그럭저럭 자아도취에 빠져서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해 주지 않아도, 나만 사랑해도 참을 만하다. 왜냐하면 그 사람을 바라보고 생각만 해도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동안이지, 평생 그러기는 쉽지 않다. 뭔가 보상이 주어져야 인간관계는 가능하다. 콩깍지가 씌었다가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다거나, 그 대상에 대해 시들해지면 콩깍지가 벗겨지면서 뇌가 정상으로 돌아온다. 

그러면 여태까지 했던 이타적인 행동들이 미친 행동처럼 느껴지거나, 아니면 아름다운 추억이 되기도 한다. 당연히 그 사람이 한 행동이 예뻐 보이지 않고, 미워 보이기까지 한다. 그 사람이 한 말에 자존심이 상하고, 내가 일방적으로 준 호의와 사랑이 아까워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그 사람을 위해 단 한 푼의 돈도 안 쓰게 되고, 만나는 것도 내가 편한 곳에서, 내가 편한 시간에 만나자고 얘기한다. 만약 상대방이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하면, 나는 ‘안 만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또한 배려도, 미안하다는 말을 하기도 싫어진다. 이런 상태에서 미안하다거나 고맙다거나 사랑한다고 말을 했다면 그것은 내가 편하기 위해, 내가 당장 섹스를 하고 싶어서 하는 말이지 상대방을 위한 말은 아니다. 

즉 자존심과 이타심은 사랑과 함께 오고 사랑과 함께 사라진다. 만약에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나의 행동을 자세히 봐라. 만약에 누군가 나를 사랑하는 것 같다면 그 사람의 행동을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다. 

자존심을 부리고 있는가, 상대방을 배려하는 행동을 하고 있는가? 조그마한 일을 참는가, 참지 않는가. 조그만 일도 참지 못한다면,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자존심은 사랑과 함께 사라지고 사랑 끝나면 다시 나타난다.

내가 사랑하는지, 사랑받는지 알고 싶으면 나와 상대방 행동을 보면 된다. 

상대방이 나의 조그마한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면 그 또는 그녀는 당신을 용서할 마음이 없는 것이다. 아니, 어떤 핑계를 대서 괴롭히거나, 온갖 짜증을 내고 싶은 것이다. 더 이상 배려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더 이상 사랑에 빠져 있지 않은 탓이다. 

만약 상대방의 배려나 용서를 바란다면 화를 내면서 싸울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에 사랑의 감정을 만드는 것이 바른 길이다. 이것이 진리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모든 일을 해결한다면, 싸움에는 싸움으로 대응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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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영화나 소설의 주제도 이와 같다. 증오를 녹이는 것은 증오가 아니라 사랑이다. 사랑의 속성은 참 묘해서, 사랑해야 사랑받을 수 있고, 사랑받아야 사랑할 수 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다면 이타적이 되어야 한다.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내가 사랑받기 위해 남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 그게 사랑의 비밀이다. (CNB저널)

글. 박혜성  동두천 해성산부인과 원장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내분비학 전임, 인제대 백병원 산부인과 외래 조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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