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삼신할머니가 부부에게 아이를 점지해 준다고 믿던 시절이 있었다. 임신이 되지 않으면 깨끗한 정화수를 떠놓고 정성을 다해 삼신할머니에게 기도를 올렸다. 하지만 ‘삼신할머니의 뜻’을 기다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닌 시대가 왔다. 최근 고령·고위험 산모가 증가하면서 난임·조산·기형아·미숙아 출생이 늘고 있다. 부부 스스로 철저히 임신을 계획하고 준비해야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게 됐다. 말 그대로 ‘계획임신’, 다른 말로 ‘베이비 플랜(baby plan)’이다. 전문가들은 건강한 임신·출산의 최선책은 계획임신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계획임신에 대한 인식은 부족한 실정이다. ‘베이비 플랜, 계획한 아이가 건강하다’는 주제로 계획임신을 제안한다.

산모 10명 중 3명만 계획임신
3년 전 결혼한 주부 한지연(가명·30)씨는 세 차례의 임신을 경험했다. 모두 계획 없이 들어선 아이였다. 첫 아이는 임신 초기에 심장 뛰는 것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연 유산됐다. 둘째 아이는 임신인지 모르고 감기약을 복용한 것 때문에 임신중절수술을 했다. 그리고 최근 임신 5주째에 접어들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문제는 그동안 임신한지도 모르고 흉부 X선·내시경 검사를 했으며, 감기 때문에 주사를 맞고 약을 복용한 것. 한씨는 유해물질에 대한 노출로 기형아를 낳을까봐 또다시 임신중절수술을 고민하는 중이다. 제일병원 산부인과 한정열 교수는 “계획임신을 했더라면 자연유산·기형유발 요인을 애초에 피했거나, 약물 노출 정도를 판단해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계획임신은 건강한 아기를 출산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다. 한 교수는 “임신 전 임신부·태아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는 위험요인을 확인하고 이를 개선해 적절한 시기에 임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단순히 ‘올해 안에 임신을 하겠다’는 식의 계획에 그치지 않는다. 임신 전 검사와 예방접종·약물복용 관리·생활습관 개선·산모 질환 관리도 계획임신의 범주에 속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계획임신에 대한 국내 가임기 여성의 인식은 부족하다. 현재 우리나라 계획임신율은 50%에 못 미친다.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임신 준비 및 출산에 대한 조사’에 따르면 산모 1671명 가운데 임신을 계획한 산모는 28.8%, 무계획 산모는 71.2%로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무계획 임신 땐 태아 유해물질 노출 2배로
계획임신은 길게는 6개월, 늦어도 임신 3개월 전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선 산부인과를 방문해 내외과 병력·가족력·약물 복용 여부 등을 진단·상담한다. 임신 시 나쁜 영향을 주는 의학적 문제가 없는지를 확인하는 것. 건강상 문제가 없다면 홍역·풍진·수두·간염·폐렴 등 예방접종을 챙기고 엽산을 복용한다. 특히 풍진 바이러스·엽산 결핍은 기형아 출생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둘 다 임신 3개월 전부터 대비해야 한다. 성바오로병원 산부인과 권지영 교수는 “풍진 백신 접종 후에는 3개월의 피임기간을 둬야한다”며 “엽산의 경우 체내 수치가 권장 농도까지 올라가려면 3개월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후 체중 관리·금주·금연 등을 실천하며 임신에 최적화된 몸을 만든다.

이같은 계획임신의 가장 큰 목적은 술·담배·약물·방사선·산모의 만성질환 등 위험요인으로부터 태아를 미리 보호하기 위함이다. 권 교수는 “수정 후 2~8주는 태아의 장기가 형성되는 시기다. 기형유발 물질에 가장 취약한 시기여서 영구적 손상이 발생할 수 있다”며 "무계획임신의 경우, 대개 임신 6~7주에 임신 사실을 알게 되는데, 이미 태아의 주요 장기는 온갖 위험요인을 접한 상태라 의료진이 해줄 수 있는 게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 계획임신과 무계획임신의 유해물질 노출 정도는 2배 가량 차이가 난다. 대한태교연구회 박문일 회장(동탄제일병원)은 “임신 초기 기형유발 물질에 노출된 정도를 비교한 결과, 무계획임신 그룹이 77%로 계획임신 그룹(38%)보다 2배 높았다”며 “특히 약물은 3배, 알코올은 2배, 방사선은 2.5배 정도 차이가 났다”고 말했다.


계획임신으로 산모 자신감 상승, 심리적 안정
계획임신은 무분별한 임신중절을 예방한다. 박문일 회장은 “임신인지 모르고 약물을 복용한 임신부는 일반 임신부에 비해 태아 기형에 대한 심리적 불안이 8배 이상 높다”며 “임신중절수술자 10명 중 1명은 약물 복용으로 인한 기형아 출생이 우려돼 수술을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박 회장에 따르면, 기형유발 물질로 의심되는 성분은 여드름약의 이소트레티노인(로아큐탄), 항경련제의 발프로산(데파콘주), 해열진통제 아세틸살리실산(아스피린), 감기약 구아이페네신(판콜·판피린) 등이다. 한정열 교수는 “약물의 종류와 노출 시기·용량에 따라 기형 여부가 달라진다”며 “계획임신을 하면 위험약물을 미리 피하고, 태아 기형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계획임신은 건강한 모체를 만드는 동시에 질병 발생을 낮춘다. 예컨대 당뇨병 환자가 당 조절 없이 임신했다면 기형 발생률이 10% 정도지만, 계획임신으로 혈당을 조절하면 기형 발생률은 2% 수준으로 낮아진다. 당뇨성 산증 같은 합병증을 예방한다.

이처럼 임신 전 체계적인 관리는 예비임신부의 자신감을 높인다. 한 교수는 “임신 전 태아의 위험요인을 미리 제거하면 태교·모유 수유 훈련·분만법 교육 등 산전 관리를 보다 조기에 계획적으로 받을 수 있다”며 “긍정적이고 여유롭게 임신을 즐길 수 있게 돼 출산 결과도 좋다”고 설명했다. <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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