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 영양과 태아 프로그래밍

<글= 단국의대 제일병원 산부인과 김민형 교수>

‘백세 시대’를 앞두고 있는 현대인 건강의 화두는 성인병-고혈압, 당뇨, 심혈관질환에 대한 예방과 관리일 것이다.  성인병은 개인의 식습관, 운동 부족, 스트레스 등이 복합적으로 관여하는 질환, 즉, 성인이 돼 부적절한 건강관리로 발생하는 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성인병이 임신 중 태아였을 때 이미 결정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성인기의 질환이 태아기에 결정(프로그래밍)된다’는 태아 프로그래밍 학설은 임신 중 영양이 태아의 건강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성인이 됐을 때의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으로 그 역사와 의미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태아 프로그래밍’ 이론은 1990년대 초 영국의 역학자인 David Barker 등이 제시한 학설이다. 당시 이 연구진은 심혈관 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이 출생당시 체중이 적을수록 높다는 것을 알아냈고, 이후 당뇨병, 고지혈증과 같은 질환 역시 출생 당시 체중이 적을수록 높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임신 중 불량한 영양 섭취는 태아 저체중의 중요 요인이며, 이는 태아의 신체구조, 기능 및 대사를 영구적으로 프로그래밍시켜 성인기의 심장질환, 대사성 질환의 근원이 된다는 Barker 가설을 제시했다. 이것이 ‘태아프로그래밍’ 이론의 시작이다.

1990년대 제시된 Barker 가설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발생한 네덜란드 대기근(Dutch famine)에 대한 연구를 통해 2000년대에 다시 한번 입증됐다. 2차 세계대전 종료 직전인 1944년 11월부터 1945년 4월까지 약 6개월 동안 독일군은 네덜란드로 가는 모든 교역로를 차단, 네덜란드 국민은 ‘Hunger winter’라고 불리는 극심한 대기근을 겪게 된다. 당시 임산부였던 여성에게서 출생한 사람들이 50세가 됐을 때 건강상태를 조사했는데, 대기근 당시 임신 초기였던 임산부에게서 출생한 사람들이 심혈관 질환과 고지혈증 빈도가 가장 높았고, 건강지수는 가장 낮았다. 이 네덜란드 연구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임신 중 영양 상태, 특히 임신 초기부터 임신 전 기간 동안 적절한 영양섭취가 태아기는 물론 성인기 건강에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영양 부족만이 문제가 될까? 현대 사회는 영양 과잉으로 인한 과체중, 비만이 더 문제가 되고 있다. 제일병원의 임산부 통계에서도 임산부 5명 중 1명은 과체중으로 조사됐다. 임신 중 영양과 태아 프로그래밍에 대한 후속 연구들은 주로 동물실험을 통해서 이뤄졌다. 실험 결과 어미 동물이 비만하거나 임신 중 먹이를 과잉 섭취한 어미 동물에게서 태어난 자손들도 성체가 됐을 때 혈압, 고혈당, 고지혈증이 높다는 것이 밝혀졌다. 즉, 임신 중 부족한 영양 섭취도 문제가 되지만, 영양 과잉 역시 태어난 아기의 미래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임신 중 영양 상태가 어떻게 태아의 건강을 프로그래밍시켜 성인병을 발생하게 하는지 그 기전이 궁금할 수 있다. 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기전들을 제시했다.

첫 번째, 부적절한 영양은 태아에게 혈압조절에 관여하는 콩팥의 사구체와 혈당 조절에 중요한 췌장 세포 발달 저하를 가져온다. 즉 조직을 리모델링해 훗날 성인이 됐을 때 기능 저하로 고혈압과 당뇨 발생이 증가된다.

두 번째, 태반의 영양물질 전달 능력에 영향을 미쳐 태아에게 적절한 영양공급이 되지 않는다.

세 번째, 영양 부족 또는 영양 과잉은 임산부의 스트레스 호르몬을 증가시키고 이 호르몬은 인슐린 조절 물질과 염증 매개 물질의 전도를 증가시켜 태아의 신체 발달에 영향을 끼친다.

이 외에도 호르몬이 혈액 내 산화성 물질을 증가시키거나, 유전자의 발현에 영향을 끼쳐 태아의 조직 발달과 기능을 변형시킨다는 등 임산부 영양과 태아 프로그래밍에 대한 기전을 밝히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임신 중 영양 결핍, 또는 영양 과잉이 태아의 건강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성인이 되어서의 건강에까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밝혀졌지만, 그 반대로 태아 미래의 건강까지 좋게 할 수 있는 효과적인 식품이나 물질에 대한 자료는 아직 부족하다는 것이다.

현재까지는 임신 전부터 출산 시까지 엽산을 400마이크로그램 이상 매일 꾸준히 섭취하고, 적절한 운동으로 가급적 정상 체질량 지수를 유지한 상태에서 임신하는 것이 건강한 임신의 첫걸음이다. 임신 중에는 곡류, 어육류, 채소, 지방, 우유, 과일의 6가지 식품군이 골고루 들어간 식사를 규칙적으로 하고, 임신 전 체질량 지수에 따른 총 권장 체중 증가량대로 임신 중 체중을 관리하는 것이 최선이다. 실제로 제일병원 임산부 통계에서는 전체 임산부의 절반 정도가 임신 중 체중 권장량을 초과하는 것으로 나타나 적정 권장량대로 체중을 관리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임산부 본인은 물론 의료진들도 임신 중 적절한 체중 증가에 더 관심을 가지고, 실천할 수 있게끔 노력을 해야 한다.

임신 중 영양이 임산부는 물론 태아, 나아가서 태어난 아기의 미래 건강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지만 임신 중 영양만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니 이것이 전부인 것으로 오해 하지 말아야 한다. 임신 중 영양을 어렵게 받아들이고 부담을 느낄 필요는 없다. 거꾸로 생각하면, 10개월의 임신 기간만이라도 태아를 생각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골고루 섭취하되 과식은 되도록 피하고, 일주일에 3일 이상, 30분 정도의 규칙적인 걷기 운동만이라도 꾸준히 실천한다면 보다 건강한 임신과 태아를 이뤄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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